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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한국가요

영화 국제시장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철수작전 배경

by 복사꽃 세상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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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영화와 노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감이 가는 영화입니다. 이산가족의 아픔과 가장의 책임감과 역할 등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저이지만 헤어진 여동생을 전화로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는 그냥 신나는 노래인 줄 알았는데 그 내용을 음미해 보니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슬픈 노래입니다. 
 
영화 "국제시장"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의 배경은 모두가 흥남철수작전이었습니다.

 

1. 흥남 철수 작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5일∼12월 24일까지 10일간 국군과 유엔군이 흥남 항구를 통해 해상으로 완전히 철수한 작전을 말합니다. 
 
이 작전은 한국군과 유엔군이 38선 이남 지역으로 다시 물러난 이른바 ‘1·4 후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미 제10 군단장 알몬드 장군은 처음에는 6백만 톤이나 되는 무기와 장비를 수송해야 했기에 피난민 수송이 어렵다고 하였으나,
 
국군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과 통역인 현봉학의 끈질긴 설득으로 남는 공간에 피난민 수송을 허락하였습니다.
 
피난민 승선이 허락되자 부두는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하였습니다.
 
LST 한 척에는 정원의 10배가 넘는 5천여 명이 승선하였지만, 30만의 인파 중 마지막까지 배를 탄 피난민은 9만 1천여 명이었습니다.
 
193척의 군함으로 약 10일간 이뤄진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10만 5000여 명의 병력9만여 명의 피난민들은 물론 1만 7000여 대의 차량, 35만 톤의 군수품 등이 안전하게 남한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흥남을 떠난 마지막 배인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사연은 감동적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출처 : 위키백과)

당시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정원은 60명이었고,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13명만 더 태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 육군 제10 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민사 고문으로 있던 한국인  현봉학은 자신이 승선하고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레너드 P. 라루)에게 최대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을 태워서 구출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죠.
 
이에 탄복한 라루 선장은 12월 23일 배에 실려있던 군수물자 25만 톤을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령했습니다. 
 
피난민들도 자신의 짐을 버리고 승선하여 모두 1만 4천 명이 탈 수 있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8시간 동안 항해하여 부산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음식과 물, 이불, 의약품이 모두 부족했고, 적이 공격하는 와중이었지만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12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난민으로 가득 찼다는 이유로 입항이 거절되었습니다.  
 
라루 선장은 할 수 없이 50마일을 더 항해해서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을 무사히 내려놓아  ‘크리스마의 기적’이라고 불렸습니다.
 
또한 항해 도중 아기도 5명이나 태어났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한때 가장 많은 난민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 일을 기리기 위해 경남 거제시의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흥남철수작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2. 영화 "국제시장"은

2014년 12월 17일 개봉되어 1,426만여 명의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입니다.
 
흥남 철수 작전을 통해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 국제시장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 철수, 파독 광부, 월남 전쟁, 이산가족 찾기 등 우리나라 아픈 역사의 단면을 보여 주는 사건에 주인공 덕수(황정민)를 통해 그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흥미 위주의 영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에 얽힌 이산가족,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 등을 통해서 뭔가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아직까지 이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반드시 관람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국제시장" 명장면 (유튜브)]

3.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는

현인 님이 만 34세이던 1953년에 발표된 곡입니다. 이 노래는 현인 님을 1950년대 대표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하는 노래이죠.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어디에 있든지 간에 굳세게 살아가길 바라며, 남북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하는 내용입니다.
 
노래 가락은 경쾌하지만 그 내용은 실향민의 아픔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래는 전쟁 직후의 시대상과 부합하면서 '국민가요'로 불릴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2014년 선정한 ‘한국 대중가요 고전 33’ 선에도 현인 님의 작품 중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과 함께  "굳세어라 금순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공간적 배경인 부산은 가수 현인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산 영도구청에서는 부산 출신인 현인 님과 그의 노래를 기리기 위해 영도대교 입구에 현인 노래비와 그의 동상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 부산시와 부산시 서구청은 송도해수욕장에 현인 광장을 조성하면서 현인 님의 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를 건립하였습니다.
 
같은 곡의 노래비가 두 개나 생긴 것은 <굳세어라 금순아>의 위상을 짐작하게 합니다.

 

가수  "현인(1919~2002)" 님은

본명은 현동주이며, 일제강점기 때부터 노래 활동을 시작한 '가수 1세대'의 대표적인 대중가수였습니다.
 
1947년 데뷔곡인 "신라의 달밤"으로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왕성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현인 님의 노래들은 1950~1960년대 격동의 시대에 서민들의 아픔과 향수를 달래주기도 하고,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서울 야곡",  "전우야 잘 자라",  "럭키 서울" 등이 있습니다.
 

노래 가사의 내용

눈보라가 휘날리면서 바람이 차가운 흥남부두에서 목소리 높여 불러 보고 찾아보았다. 금순아 어디를 가서 길을 잃고 해메였더냐?
 
나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후퇴 이후 나 홀로 남한으로 내려왔다. 일가친척 없는 나는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금순아 보고 싶고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떠있는 초승달도 외로워 보이는구나.
 
철의 장막을 사이에 두고 모진 설움을 받고 살아간 들, 이 세상에 너와 나 사이에는 변함이 있겠느냐!
 
금순아 부디 굳세게 살아 다오!
남북통일이 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 손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노래 가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남북) 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나 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노래 감상(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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